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망조
2000년대 경제 호황기의 남미 국가들은 국부 창출이란 쉬운 것이었다. 남미 국가들 중 원자재로 유명한 국가로 치자면 브라질이 으뜸일 것이요, 원유라면 베네수엘라였다. 하지만 국부 창출이란 이렇게 간단히 술술 풀려가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겠으나 지속 가능한 국부 창출이란 수많은 질곡의 시간과 경험이 쌀이고 난 이후에야 가능하다. 이는 마치 세대와 세대 간에 이어지는 이어 달리기와도 같은 것이다. 천운도 다라야 할 것이며 각 세대 간에 큰 갈등 없이 바톤이 정확히 이어져야 한다.
OECD(원유 수출기구)의 경우 같은 지역에 모여있는 원유 생산국일뿐더러 같은 종교 하에 일정 수준 이상의 동질적 유대감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지속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집단으로서의 협상력이 강하다.
하지만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는 지역적으로 동떨어져 있다. 또한 이들이 주로 수출하는 원자재 가격의 결정이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선물시장에서 결정된다. 고생하는 품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서 팔지만 가격은 미국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차피 원자재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초재일 뿐 그 자체가 고수익 상품이 아닌 것이다. 그저 명패만 뒤바꾸면 가격은 요동치며 선물 시장은 그들만의 리그이고 그들의 눈 밖에 나면 가격 폭락이라는 철퇴를 맞을 뿐이다.
소위 브릭스(BRICS) 열풍으로 2000년 대 초반을 지나면서 경제 호황이 찾아왔고,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서는 두 명의 지도자가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그 주인공들이다. 적어도 원자재 시장이 호황인 이상 이들의 인기와 권력은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원유 시설의 국유화에 착수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유전의 개발 및 시추를 해 주었던 것은 단연코 미국의 오일 메이저들이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세금을 징수하고 일자리 창출로 덕을 보았다.
하지만 국유화 조치를 기점으로 양자 간의 관계가 종료되고 있었기에 미국과 등을 진 이상 원유산업에 신규 투자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2008년 이후 원유 수요가 박살이 나 버렸다. 미국이 소비를 멈췄으니 중국 역시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이는 곧 유가의 하락을 의미한다. 그리고는 유가가 끊임없이 추락했다.
미 연준의 출구 전략이 강력한 인플레이션 억제책과 동반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원자재에 의존하는 남미 경제는 시련의 시기에 접어들게 된다. 유가 하락으로 국부가 떨어지는 가운데 미국의 오일 메이저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되자 베네수엘라는 미래 가치를 전혀 머금지를 못했다.
화폐인 볼리바르는 평가절하의 수준을 넘어 쓰레기 취급받는다. 생필품 가격은 폭등하고 볼리바르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없다. 베네수엘라에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온 것이다.
베네수엘라 화폐 볼리바르화의 휴지 조각 사건 예시
이러한 와중 2016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10과 MS 오피스 대란이 발생한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를 하고 있던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 10과 MS 오피스는 당연히 베네수엘라 지사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화 가치가 휴지조각 수준으로 평가절하 되면서 단 몇 달러로 이러한 세트를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빛의 속도로 지역의 차이를 통해 경제적 편익을 취하려는 움직임이 대거 발동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구입 대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나 몇 달러에 구입한 정품 인증키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소문이 얹어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은 마이크로 소프트 베네수엘라 지사의 웹사이트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이크로 소프트에서 곧바로 반응하며 이틀만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사건은 볼리바르화의 가치가 종이조각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인들에게 확인시켜준 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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